<이태원 명칭 유래, 공동묘지이었다가 서울의 외국인거리로>

2023. 10. 31. 09:25증시일정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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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명칭 유래, 공동묘지이었다가 서울의 외국인거리로>

1. 이태원의 명칭 유래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법정동으로, 행정동으로는 이태원1동과 이태원2동에 편제되어 있다.

용산구의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외국인, 외국 상품, 외국 문화의 집결지로 유명하다.

옛 기록에는 이태원(梨泰院) 외에도 한자가 다른 이태원(李泰院), 이태원(異胎院) 등의 다른 이름도 있었다.

'용재총화'(1525, 중종10년)에 따르면 당시 이곳을 지금의 배 이(梨)가 아닌 오얏 이(李)를 써 '李泰院'이라 표기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직후 이태원(異胎院)이라는 이름이 쓰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여승들만 있던 운종사
(雲鐘寺)를 점거하고 승려들을 겁탈해 많은 혼혈아가 태어났다고 한다.

나라에서 이곳에 조선인이 아닌 다른 씨앗이 잉태됐다는 뜻에서 '異胎院'이라는 보육원을 둬 혼혈아를 돌보게 한 것이 이태원의 또다른 한자 표기를 낳게 됐다.

효종 때 이런 명칭이 치욕스럽다고 하여 배나무를 많이 심고 지금의 '梨泰院'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2. 공동묘지였다가 서울의 외국인 거리로

조선시대 중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울 용산구 일대에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관순이 1920.10.14.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이곳이 군용기지로 개발되면서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 병력 주둔지였다가 6.25.전쟁이후 미8군이 주둔하면서

용산기지 인근의 이태원동과 한남동은 미8군의 배후지가 되었고,

이 일대는 서울의 외국인들이 몰려사는 지역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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