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3. 21:05ㆍ경제이슈 시황정리
펌 ㅣ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논란과 진실"에서 다룬 내용 중에 후쿠시마 원전부지에서 발생한 오염수의 처리와 해양방출의 문제가 지금 가장 큰 사회적 이슈 중 하나다. 책을 쓸 때도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 문제에 관해 책임 집필한 백원필 박사님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특유의 설득력을 가지고 역할을 잘하시고 있다.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할 뿐인데, 책을 같이 쓰는 상황이었다면 함께 의논했을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IAEA에서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국에서 이 보고서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더 많은 것 같다. 심지어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려고 방한한 IAEA 사무총장에 대해 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규제업무를 하면서 외부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IAEA 안전기준은 이런 데 한국의 안전규제는 어떤가?”였다. 그런데 이번 일로 한국에서 IAEA와 IAEA의 안전기준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좀 놀랐다. 그래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논란과 진실" 제3부 제9장에 있지만, 여기서 IAEA와 IAEA 안전기준의 성격을 간단히 소개해보는 게 좋겠다.
1953년 12월,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연설에서 핵물질의 국제적 관리방안도 제안했다. 국제기구를 설치해 핵물질을 가진 국가가 그 기관에 핵물질을 제공하고, 그 기관의 감시하에 다른 국가가 이를 받아 평화적으로 원자력을 사용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계기로 1957년 7월, 원자력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핵물질이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보장할 목적으로 유엔 산하 독립기관으로 IAEA가 설립된다.
IAEA는 원자력 이용만 촉진하는 진흥기관으로 봐서는 안 된다.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려면 “안전한 원자력”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IAEA는 핵에너지국과 핵안전보안국을 설치해 진흥과 안전에 관한 기능을 분리하고 있다. IAEA 설립법(III.A.6조)은 사람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기준을 책정하고, 이를 IAEA 활동에 적용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그렇다고 IAEA가 독자적으로 안전기준을 수립해 책정하지 않는다. IAEA 안전기준은 관련 지식과 경륜을 갖춘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모여 초안을 잡는다. 초안에 대한 모든 회원국의 검토의견을 고려하고, IAEA 안전기준위원회를 거쳐 최종안이 만들어진다. IAEA 안전기준은 기본안전원칙, 안전요건 및 안전지침으로 계층화되어 있다. 기본안전원칙과 안전요건은 IAEA 이사회 승인을 거쳐 확정되며, 안전지침은 사무총장의 승인으로 확정된다. IAEA 안전기준이 국제규범의 성격을 갖는 이유이다. 1996년에 발효된 국제법적 효력을 가진 「원자력안전협약」 가맹국(한국은 1994년에 비준)은 IAEA 안전기준을 자국 원자력 안전규제에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IAEA는 회원국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는 IAEA 안전기준을 근거로 검토와 평가가 이루어진다. 후쿠시마 원전부지에서 발생한 오염수의 처리와 해양방출에 관한 안전성 검토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IAEA 안전성 종합보고서는 일본의 요청에 따른 서비스 결과이지만, 그 내용, 평가 및 결론은 독립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는 얼마나 권위가 있을까.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는 후쿠시마 원전부지에서 발생한 오염수의 처리와 해양방출이 “안전기준 및 국제법에 부합하고 인체와 환경에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IAEA의 독립적 검토를 지지한다”라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처럼 IAEA의 독립적 검토는 국제적으로 높은 권위를 가진다.
한편, 각 회원국의 안전은 주권 사항이므로 애당초 IAEA의 어떤 서비스도 회원국의 안전을 보증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해당 IAEA 안전기준이라는 국제규범과의 정합성 판단이 IAEA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의 목적이다.
IAEA의 독립적 검토에서는 후쿠시마 원전부지에서 발생한 오염수의 처리와 해양방출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다뤘다. 또 그중에서도 안전성 평가에 가장 초점이 되는 것이 방사선원(Source Term)과 방사선환경영향평가 부분이다. 종합보고서 본문 분량이 116쪽인데, 이 중 4분 1이 여기에 할애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부분의 내용과 결론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럴까?
2021년 4월,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부지에서 발생한 오염수의 처리와 해양방출을 결정하면서 방출기준도 함께 밝혔다. 기본적으로 규제기관 고시의 농도한도 이하로 하되, 다핵종제거설비(ALPS)에서 제거되지 않는 삼중수소의 방출기준은 고시 농도한도의 40분의 1인 리터당 1,500베크렐로 하고 그 총량은 연간 22조 베크렐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A)는 이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방출되는 핵종 농도가 가장 중요한 판단재료로 공표된 것이 한국에서 주로 방출 핵종, 특히 삼중수소 농도에 초점이 맞춰져 논의되게 된 것 같다.
덧붙여, 이 농도기준에 대해서도 엄밀하게 논할 점이 있다. 후쿠시마 원전부지의 피폭 상황은 정상적인 원전의 방사선 방호를 통한 계획피폭과 사고로 인해 배경이 되는 기존피폭(예를 들면 오염수 탱크로부터의 방사선 피폭)이 동시에 존재한다. 앞서 규제기관 고시 농도한도는 기존피폭이 없는 계획피폭 상황만을 고려한 것이다. 2012년 NRA는 2013년 3월까지 후쿠시마 원전부지 경계에서의 유효선량을 연간 1밀리시버트 미만으로 할 것을 요구했다(2013년 4월, 지하저수조에서 누출이 생겨 요구기한은 3년 정도 늦춰졌다). 부지 경계에서의 유효선량을 연간 1밀리시버트 미만으로 하려면, 기존피폭에 따른 선량만큼 뺀 여유분만이 계획피폭분이 된다. 삼중수소 농도 1,500베크렐/리터 미만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보조배수(Sub-Drain) 등의 배수농도 운용목표이며, 이런 배경에서 정해졌다. 만약, 삼중수소 방출한도를 적용하지 않고 고시 농도한도 이내로 방출한다면 부지 경계에서의 유효선량 한도를 만족시킬지 확실하지 않다.
IAEA는 종합보고서(물론 그 전 태스크포스 보고서에서도 자세히 언급했다) 39쪽에서 이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IAEA 안전기준(GSG-9)은 방사선 방호의 최적화 과정으로 선량한도(Dose Limit)보다 작은 값으로 선량제약치(Dose Constraint)를 규제기관이 설정하도록 요구한다. 선량제약치는 알라라(ALARA)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데, 원자력시설 부지 경계 너머의 공중 피폭을 저감시키기 위해 규제기관이 사업자를 더욱 압박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IAEA 종합보고서에서 선량한도와 선량제약치의 구분 사용을 지적한 부분을 구글번역을 이용해 번역하면 이렇다.
“NRA에 대한 첫 번째 미션에서, NRA는 ALPS 처리수 배출에 대해 NRA가 설정한 기준(연간 0.05mSv) 외에도 원자로 등 규제법의 두 번째 선량기준(부지경계에서의 가상의 극한 상황에서 연간 1mSv)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태스크포스는 이 두 가지 기준의 차이점은 이해당사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ALPS 처리수 방출에 대한 선량제약을 설정할 때 명확하게 설명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두 번째 미션에서, NRA는 태스크포스에 두 선량기준의 차이를 추가로 설명했다. (중략) ALPS 처리수 방출에 대한 선량기준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의 전형적인 습관 데이터를 사용해 ALPS 처리수 방출로 대표인에게 연간 0.05mSv의 선량제약 조건이다. 요약하면 NRA는 ALPS 처리수의 배출은 통제된 배출이므로 NRA는 해당 활동을 계획된 피폭 상황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피폭 상황으로 관리되는 더 큰 후쿠시마 원전부지의 맥락 안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NRA는 두 가지 선량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태스크포스는 NRA가 이 두 가지 기준을 사용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두 가지 선량기준 사용이 국제 안전기준과의 일관성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태스크포스는 분명히 ALPS 처리수 방출과 관련이 있지만 매우 다른 방식으로 계산되는 두 가지 선량기준을 갖는 것이 이해당사자에게 혼란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태스크포스는 NRA가 불필요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대중에게 이러한 차이점을 설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런 혼란은 NRA가 제공한 면이 있다. NRA는 정부가 해양 방출과 그 기준을 공표한 2021년 4월로부터 10개월이 지난 2022년 2월에 선량제약치로 0.05mSv를 결정했다. 그럼 이 선량제약치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1975년, 당시 원자력위원회는 「발전용 경수로 원자로시설 주변의 선량목표치에 관한 지침」을 책정했다. 선량목표치는 원전의 정상 운전 시 환경에 방출하는 방사성물질에 의해 주변 공중이 받는 선량을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한 낮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목표'이다. 이 심사지침은 2001년 일본이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권고(ICRP-60)를 적용하면서 개정되었다.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 지침을 개정하면서 선량목표치를 연간 0.05mSv로 정했다. 이 값을 토대로 NRA는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와 방출의 선량제약치를 연간 0.05mSv로 정했다. 다만, 과거 심사지침의 선량목표치는 기체와 액체 모두가 대상인데, 이 선량제약치는 액체만을 고려하는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에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시지침은 원자로 등 규제법과 함께 허가기준으로 사용되었다. 사고 후 원자력 안전규제 체계와 법령이 바뀔 때 이 심사지침의 내용이 원자로 등 규제법령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NRA가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와 방출에 선량제약치를 적용하기로 결정했지만, 일본의 원자로 등 규제법에 선량제약치 규정은 없는 것 같다.
참고로, 한국은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174조를 받아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 제2019-10호 제16조(환경상의 위해방지) 제1항에 방출 핵종의 농도제한이, 제2항에 (용어로 써있지는 않지만) 선량제약치가 제시되어 있다. 동일부지 내에 다수의 원자력관계시설을 운영하는 경우 제한구역 경계에서의 연간 선량은 유효선량 0.25밀리시버트로 제한된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정리해보자. 첫째, 후쿠시마 원전부지 내에는 기존피폭과 계획피폭 상황이 병존한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우럭이 잡힌 것은 기존피폭 때문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와 방출은 계획피폭 상황이고, 실질적인 방출기준은 고시의 농도한도라기 보다는 선량제약치로 연간 0.05mSv 미만이다.
방사선영향평가는 해양으로 방출되는 방사선원으로부터 대표인이 받는 피폭이 이 선량제약치 미만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방사선원을 구성하는 핵종들이 부지 경계에 있는 사람(대표인)과 생태계에 미칠 수 있는 경로와 시나리오가 고려된다(예를 들어 해산물 섭취, 해안선 체재 시간, 수영 시간 등). IAEA는 종합보고서 결론(83쪽)에서 도쿄전력이 수행한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와 해양방출에 따른 방사선영향평가 방법은 IAEA 안전기준(GSG-10)을 준수하며, “선량제약치인 연간 0.05mSv보다 1,000배 이상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항상 그런데,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을 때 간단하고 명쾌하게 쓰자고 한 결의(?)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재능이 부족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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