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3. 08:47ㆍ카테고리 없음
펌 ㅣ 대구 외상 사망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사고는 항상 여러가지 우연과 필연이 겹치면서 발생한다. 환자 신고부터 구급차를 거쳐 사망까지, 진행 과정에 아쉬운 순간도 많고, 또 반대로 그럴만 했다고 이해되는 순간도 많다.
(응급실 뺑뺑이는 다른 글타래에서 풀고 있는 중이라 여기서는 생략.) 이번 사건에 두 가지 정도 새로운 문제점이 눈에 띄는데, 그 중 하나를 먼저 얘기한다. 둘 모두 응급의료체제 개선을 위해 분명 중요한 사안인데, 놀라울 정도로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다.
첫 번째 문제는 구급대원의 환자 중증도 분류 실패다. 모종의 이유로, 구급대원은 환자의 추락 높이를 4층이 아닌 2층으로 잘 못 파악하였다고 한다.
많은 중증외상 환자가 초기에 경증으로 간과된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 의식과 생체징후가 정상이라서 환자는 경증으로 분류되었다. 응급실에도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었다고 한다. 4층이 아닌 2층 추락 환자이며 안정적인 상태라고.
하지만 4층과 2층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고작해야 2층 차이 아니냐고? 안타깝지만. 추락 환자에서 2층 차이는 생사를 가르는 변수다.
현장 구급대원은 x-ray, CT같은 검사장비가 없다. 그렇다면 환자의 중증 여부를 어떻게 알아낼까? 어느 경우에 중증외상이라고 판단해서 큰 병원으로 이송하느냐는 질문이다.
절대적인 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기준은 있다. 생체징후, 사고기전 등의 리스트가 있는데, 여기에 하나라도 해당하면 중증외상이다. 이 환자는 기준에 부합했을까? 그렇다. 추락 높이 때문이다.
교과서 기준으로, 추락환자의 중증을 판단하는 높이 기준은 20피트다.
국내 기준으로 보자. 소방청에서 발간하는 "119 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에 6미터(3층) 높이 추락은 중증외상으로 처리토록 명시되어 있다. 이송 원칙도 함께 나와 있는데, 두 말 할 나위없이 권역외상센터다.
즉, 2층이냐 4층이냐는 중증 여부를 가르는 핵심정보다. 환자의 증상이나 신체상태가 경미해 보여도 마찬가지다. 4층 추락은 현장에서 무조건 중증외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것은 룰이다. 응급실이나 외상센터 의료진도 똑같이 적용하는. 이 정보 하나로 중증도 분류는 종결이다.
"응급실에서 중증도 분류 시행하지 않음. 정당한 수용거부 사항이 아님." 두가지 이유로 여러 병원이 행정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권역외상센터에 4층 추락 사실을 전달했다면, 병원을 더 수배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응급의학과 의사들 인터뷰를 보았다. 현장에서 구급대원이 중증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다. 동의한다. 현장의 긴박하고 제한된 상황에선 원래 무엇이든 어려운게 당연하다. 더구나 환자의 중증도는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법. 완벽한 중증도 파악은 애당초 불가능하단 얘기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손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중증도 파악이 어렵다는 당위적 주장을 앞뒤로 교묘히 배치하면서, 문제의 핵심 하나가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다. 가장 중요한 추락 높이 정보의 오류다. (응급실이 처벌받는 사이, 소방의 책임은 눈 녹듯 사라졌다.)
현재 pre-KTAS 정책이 준비중이다. 응급실의 중증도 분류를 현장 구급대원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다. 이미 시범사업까지 완료했다. 기대가 적지 않다. 현장에서 중증도를 판단하면, 경증은 작은 응급실로 중증은 큰 응급실로 이송할 수 있다. 대형병원 응급실의 과밀화를 막고, 응급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쯤에서 나는 물어야겠다. 현장의 중증도 분류가 애당초 믿기 어렵다면, pre-KTAS는 과연 가능한 정책인가?
환자의 의식이나 활력징후, 신체검진은 현장에서 판단이 틀릴 수 있다. 그것이 pre-KTAS를 막을 근거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놓쳐선 안되는 정보도 있다. 이 사건은 가장 치명적인 정보에 오류가 있었다. 추락 높이는 틀려선 안되는 중요한 정보다.
이렇게 되면 응급실 의료진은 구급대원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현장의 중증도 판단에 불신이 생기면? pre-KTAS 정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 확정이다.
또 하나 예민한 이슈가 있다. 응급환자 수용거부 금지법이 코 앞에 다가왔다. 응급실에서 119 환자를 수용하지 않으면 의사를 법으로 처벌하겠다고 한다. 병원 선정은 앞으로 소방이 맡겠다는 홍보물이 벌써 나돌고 있다.
우려가 크다. 제반 사항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채로 이 법이 시행되면, 현장의 문제는 더욱 왜곡될 수 있다. 응급실은 구급차를 받기 위해 여유병상을 남기려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고, 연쇄적으로 중소형 병원은 큰 병원으로의 응급환자 전원이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응급의료 전달체계가 더 망가질 수 있다.
대구 사건의 책임에 따르면, 현장 중증도 분류는 믿을 수 없다 한다. 새로운 법률과 정책에 따르면, 병원 선정은 현장에 온전히 맡기겠다고 한다. 이 두가지 상충된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선 구급대원에 대한 의료진의 불신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한다. 그게 아니면, 앞으로 병원 전단계 정책은 어느 것도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해당 구급대원의 오판에도 사정은 있었다고 한다. 그가 이 사건에서 누구보다 고생한 당사자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구급대원을 처벌하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구급대원의 핵심정보 착오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교육이나 훈련의 문제인지 아니면 의사소통의 문제인지. 정보 취득의 질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현장에서 놓치지 말고 한번 더 확인해야 할 정보는 무엇인지 등등.
누군가는 현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응급실들 처벌받는데 강건너 불구경하지말고. 그리고 하나 더. 구급대원의 착오에 대해 이 세상이 베풀고 있는 아량을, 부디 응급실에도 보여 주었으면 한다.
대구 외상환자 사망 관련 행정처분 (⅔)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YgDKTme7F5S8DHtFJUwHbYd2BzNcfiyiL2VXfsB3NtSP9uNTXepA9uMVDe8qMV6Ll&id=100001567848059&mibextid=2JQ9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