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세 소아 사망을 두고 복지부와 SBS가 설전이다.

2023. 7. 23. 08:46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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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ㅣ 서울 5세 소아 사망을 두고 복지부와 SBS가 설전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복지부가 옳다. 본 사건은 "응급실 뺑뺑이"와 하등의 관련이 없다.

[응급실 뺑뺑이가 원인이 되어 사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는가?]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 때, 다른 것이 원인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류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여러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 중 하나가 counterfactual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지는가?라는 반사실적 가정이다.

[응급실 뺑뺑이가 없었다면, 환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성립하면, 응급실 뺑뺑이가 사망의 원인일 수 있겠다.

같은 맥락에서 먼저 대구 추락사건을 보자. 환자는 초기에 경증이었으나, 구급차에서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렀다. 병원에서 적절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생명을 잃지 않았을수도 있다.

물론 치료를 받았더라도 결국 사망했을 수 있다. 의료의 본질은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불확실의 영역이니까. 설령 그럴지라도 우리는 반사실적으로, 폭넓게, 이것을 인과 관계로 해석하자. 아무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건 틀림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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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5세 소아를 보자. 병명은 크룹이라고 알려졌다.

얼마전 폐과 선언을 했던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냈다. "급성 폐쇄성 후두염 진단을 받은 5살 아이가 서울시내 대학병원등 4군데 병원에서 진료를 못 받고 의료진이 번아웃된 5번째 병원에서야 겨우 치료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입원 진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

많은 뉴스 기사와 일맥상통하는 얘기고, 응급실 뺑뺑이가 범인으로 지목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나는 저 입장문에서 "입원 진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는 부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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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룹은 응급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이다. 전체 소아 인구의 3%에서 발생하며, 그 중 6%가량이 입원치료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크룹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아의 통계는 어떨까? 22.8%가 입원치료를 받는다.

즉, 80%의 크룹환자는 응급실 진료 후 정상적으로 집으로 퇴원한다. 모든 질병이 마찬가지지만 크룹도 경미한 단계부터 심각한 단계까지 환아의 상태는 다양하다.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경우는 1%도 안된다.

다시 말한다. 대부분의 경미한 크룹 환아는 응급실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은 후 증상이 호전되면 퇴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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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입원을 했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가?

문제는 퇴원 시점에 사망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말했다시피 증상이 호전된 크룹은 퇴원이 원칙이다. 하루 후 환아가 사망한 건?

안타깝지만, 호전 되었던 크룹이 하필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는데, 신고부터 사망까지 채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크룹이 이정도로 빠르게 진행해서 손 써 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면? 신의 영역이다.

하루 전 퇴원 시점에서 보면, 어느 의사도 안좋은 미래를 짐작할 수 없는게 맞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입원을 운운하는 건 굉장히 무책임한 주장이다.

입원이 원인으로 지목되려면,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정석적인 진료로는 퇴원 지시가 떨어지므로, 모든 경미한 크룹 환아를 (만에 하나를 대비해) 전부 입원치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전국의 모든 입원실이 남아나질 않을텐데, 그때는 크룹보다 훨씬 심한 환자도 병실이 없어 입원하지 못할 것이다. 응급실에도 영향이 온다. 입원실 포화로 응급실이 입원 대기 장소가 되고, 그 결과 어떤 환자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게 진짜 응급실 뺑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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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는 첫날 발생했다. 4개 병원에서 환아를 수용하지 못했고, 5번째 병원에서야 겨우 진료를 받았다. 그 사이에 소요된 시간은 50분으로 알려졌다.

사실 크룹 환아의 50분이, 뺑뺑이를 언급할만큼 큰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서울이 워낙 인프라가 좋아서 그런가? 지방에서는, 골든타임 심근경색 환자도 야간에 전남에서 이송오는데 1시간이 훌쩍 넘는데. 초응급수술이 필요한 대동맥박리도 서울로 이송보내면 3시간씩 걸리고…

아무튼 50분의 지연이 생긴건 사실이고, 타인이나 다른 질병과의 비교는 무의미한 일이니까. 당사자 입장에선 억울한 것도 당연하다. 50분을 아꼈으면 치료가 빨라졌을테니까. (다음날 심정지때 병원 이송에 15분이 소요됐으니, 첫날 뺑뺑이가 없었더라도 아낄 수 있는 최대 시간은 35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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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첫 날 30여분을 아꼈다면, 환아는 다음날 사망하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크룹이 그러하듯, 첫날 환아의 상태는 경미했던걸로 보인다.

"아빠 : (구급대원이) 응급실 안까지 들어가셔서 담당하시는 분하고 (대화를 했는데), 5시간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당시 119구급대는 A병원에 유선 수용 문의 결과 대기가 길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으나, 우선 A병원으로 출발해 응급실 진료를 접수했다. 하지만 진료 대기가 길어지자 D, E 병원에 소아 환자 수용을 문의한 후 E병원으로 최종 이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급대원에게 환아 상태를 인계받은 A병원 의료진은, 진료 대기를 지시한걸로 보인다. 응급실은 중증도 순으로 진료가 원칙이라서, 환자가 많이 몰리는 곳에선 너댓시간 대기가 기본이다.

(다음날 심정지때 바로 진입한 것 처럼) 환아 상태가 중증이었다면 대기없이 바로 진료했을 것이다. 고로 당일 환아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5번째 병원에서 응급처치 후 퇴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증이면 입원지시가 나왔을 것이다.

경증 크룹은 30분이 치료나 생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환자를 적절히 치료할 수 있는 응급실로 이송하는데 30분을 소모했다면, 오히려 의료전달체계라는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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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입원이 문제다. 5번째 병원은 처음부터 진료만 가능하고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진료만 하고 입원없이 퇴원했다. 그리고 하루 후 사망했다.

맥락상, 입원이 가능했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란 의심이 발생한다. 먼저 연락한 4개의 병원에 갔더라면, 그쪽에 입원실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사망을 막지 않았을까? 응급실 뺑뺑이가 도마에 오른 이유다.

(응급실 수용조차 여력없던 4개의 병원이, 뺑뺑이 없이 소아를 받았더라도, 입원시킬 여력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혹시 5번째 병원은 크룹이 경증이라서 퇴원을 지시한게 아니라, 중증임에도 병실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퇴원을 지시한걸까?

그랬다면 의사가 잘 못 한게 맞다. 중증인데 병실이 없으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물색해야한다. 집으로 퇴원 지시는 말도 안된다. 하지만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그런 배짱 좋은 의사는 없다. (최소한 자의퇴원서라도 작성하면 모를까?)

앞선 4개 어느 병원에 갔더라도, 그리고 그 병원들에 입원실이 비어 있었더라도, 입원 지시는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당시엔 크룹이 경증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핫한 주제더라도, 이번 사건에선 응급실 뺑뺑이가 언급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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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다. 당사자인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치료를 담당했던 의료진도 괴롭긴 마찬가지일톄고.

말을 아껴야할테지만, 안그래도 구설수 많은 응급의료시스템이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끌려갈까 걱정되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2xpcZ8bM68h4jPRvz7s8DLQiriA6M1PPf815TWAZvf9WH9aVgYGiYdny7CApBA97Cl&id=100001567848059&mibextid=2JQ9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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