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3. 08:33ㆍ카테고리 없음
하나하나.글을.읽다보면 참 답답해지네요
어디서부터 뭘 해결해야...할지
펌 ㅣ 응급실 뺑뺑이가 본격적인 사회 이슈로 올라서기 이전, 전공의 미달로 소아과 진료 축소가 뉴스를 타던 무렵. 당직실에서 한참 늦은 저녁을 우물거리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거 같냐는 후배의 물음에 나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정부가 낼 수 있는 방안은 뻔하지. 의사 수 증가, 그리고 소아진료를 병원의 수가와 평가에 반영하는 거."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의사1처럼 보이기 위해 평소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워낙 칠칠치 못한 성격 탓에 종종 사소한 단서를 하나씩 흘리곤 했는데, 후배는 그때마다 생기는 위화감을 스토쿠처럼 풀어내더니 결국 진실에 도달해버렸다. 그는 나의 모든 언어가 연기란 걸 완벽하게 눈치챘다!
"형이 그렇다면 그렇게 되겠죠. 형은 천재니까."
"No. 이건 비전이나 혜안이 아니야. 찬찬히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거거든. 뭐랄까? 바둑에서 말하는 외길수순 같은 거니까. 한번 착수가 이뤄지면, 다음 수순은 양쪽 모두 정해져 있지. 한동안 뻔하게 흘러가는거야."
"의사 수를 늘리면 상황이 개선될거라 생각하세요?"
"1이라도 개선되냐는 질문이면? yes. 하지만 중요한 건 자원을 투입한만큼 성과가 나오냐야. 아마 투입 대비 산출이 최악이겠지. 낙수효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거란 믿음은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니까."
"그러면 해결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환자수를 줄이면 돼. 환자를 절반으로 줄이면? 의사수는 그대로둬도, 두배 늘어난 효과가 되잖냐."
이 나라는 무언가 한참 잘못됐다. 환자당 진료횟수와 입원기간이 OECD 평균의 두배에 달한다. 유난히 아픈 유전자를 타고 나는건 아닐테다. 그저 이 나라에선 의료가 일종의 문화이고 복지이기 때문이다. 경쟁 사회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이자 휴양지가 병원이다. 끝없이 굴러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아플 때야 비로소 멈춰설 수 있달까?
하지만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경제성장은 정체되었고, 출산율은 바닥인데 노년층은 계속 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국가에서 의료를 무한히 제공받을 수 있을턱이 없다. 현재 젊은 세대가 노년이 되었을 때 국민연금을 제대로 누릴수 없을거란 계산은, 그 공식 그대로 의료에도 통용된다.
이대로는 안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문제를 입밖으로 꺼내는 거 조차 쉽지 않다.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은 때때로 눈을 감아버린다.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그래서 역사는 배울 가치가 있다. 다가올 종말을 미리 예고하는 자들은, 대개 가장 먼저 목이 떨어졌다. 소란을 피웠다는 명목으로. 뒤늦은 후회는 인간의 변치 않는 습성이다.
현재 의료체계를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눈 앞의 이슈 해결에만 급급하다.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에 기댄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잘 막는들 단기전만으로 전쟁을 끝낼수 있을리 없건만. 코로나 시기의 부채를 오늘 날 응급실 뺑뺑이로 돌려받고 있음에도,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핸들을 맡길때는 나침반이 정확한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우리 의료제도를 상징하던 "저비용 고효율"의 시대는 갔다. 의사도 국민도 철썩같이 믿고있는 저비용이라는 명제는 무너진지 오래다. 우리나라 경상의료비는 끝없이 폭등하여, 2023년에는 결국 OECD 평균을 넘어섰다. 우리의료를 찬란히 상징하던 저비용의 시대가 이미 저물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의 증가속도가 계속된다면 파국을 피할 방법은 없다.
사회, 경제와 무관하게 의료만 똑 떨어져 굴러갈리 없다. 폭발적인 경제성장 하에서 가능했던 모든 제도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나씩 수명을 다하고 있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비용을 부담해줄 젊은 인구는 줄고 있으며, 수혜가 필요한 고령 인구는 늘고 있다. 그런 우리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 표준시의 의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이제 인류는 심장이 멎어도 살아서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막대한 비용만 지불한다면. so who?
저비용은 깨졌지만 고효율은 유지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60프로대에서 답보 상태며, 재난적 의료비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뛰어난 의료접근성이 통용되는 건 경증 질환에 불과하고, 중증 질환의 무거운 병원비에 수 많은 가계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 더해, 전국적인 소아 진료망에 구멍이 뚫렸고, 이제는 응급 환자마저 뺑뺑이를 돌기 시작했다.
저비용 고효율로 세계 어디서도 불가능한 환상의 의료시스템을 구축했었던, 그 찬란한 과거의 향수에서 이제 벗어나야 할 때다. 의사도 국민도 모두 마찬가지다.
"발상의 전환이네요. 의사수를 늘리는게 아니라 환자수를 줄인다니."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하는데 의사수를 늘리면 되겠냐? 의사가 늘면 환자를 더 유인할텐데."
"그런데 환자수를 줄이는게 가능할까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죠?"
"윤석열이 나를 찾아와야지. 다른 방법은 없어. 근데 아마 안할거야. 내가 누군지도 모를걸. 박근혜도 문재인도 마찬가지였어. 다 똑같아. 뭣이 중한지를 몰라. 천하삼분지계를 구하면서도 발품 팔 생각들이 없어. 대통령이 광주에 오면 내가 설마 세번씩이나 튕기겠냐? 아마 저녁에 소주값 정도는 내가 계산할텐데. 쯧쯧."
"형이라면 가능할거 같긴 해요."
"그렇지. 로베스피에르 등장이지."
"제가 대통령이 되면 형을 꼭 복지부 장관으로 쓰겠습니다."
"안해 임마. 청문회가서 털리기 싫어. 대통령말고 전남대학교 총장이나 해봐라. 그래서 나 정식 교수나 좀 시켜줘. 가오살게."
"형이 절 그렇게 높게 평가하시는지는 몰랐네요. 제가 총장감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니."
"응. 네가 총장이 될 확률이 대통령 될 확률보다 백만배는 높으니까."
"0을 말하시는거죠?"
의사들도 생각의 틀을 좀 깰 필요가 있다. 지금 의사에게 필요한 건 수입을 늘리는게 아니라, 일(환자)를 줄이는 것이다. 주5일제, 40시간, 저녁이 있는 삶. 시대정신은 명확하다. 그런데 오직 의사만이 여기서 어긋나 있다.
수입을 높이는 게 목표가 아니고, 일(노동)을 줄이는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 리스크를 지는 자영업(미용)과 필수의료의 수입을 맞추는 건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다.
수가의 정상화는 수입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노동량을 줄여도 일정 수준의 기대수입을 보장받는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일을 줄이고 여가를 늘리면, 그만큼 민원과 소송이 줄어든다. 이때는 의사 수 증가를 반대할 이유도 없다. 즉, 의사와 환자 모두 의료 이용량 감소라는 같은 방향으로 뛰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환자도 이용량을 줄일 동기가 있다. 돈 잘 버는 의사들을 응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간과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병원을 덜 가는 것이다. 이용량을 반으로 줄이면 의사들 수입을 반토막 낼 수 있다. 어떻게 줄이냐고? 지금처럼 많은게 비정상인데 무슨. 코로나가 한창일때는 전국 어느 병원이나 파리 날렸다. 불편한 진실인데. 어지간한 질병은 병원 좀 덜 온다고해서 더 죽거나 하지 않는다.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2aTXQ8Gik3m5MMXABGqiqfoWd6ey4UCoWQKuGKfz3MT71fzhoWJz5CQJrwuWnRfBwl&id=100001567848059&mibextid=2JQ9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