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은 자금이 흘러간 것은 사실이나, 2008년 당시의 주택 경기와 같이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원리로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2023. 3. 13. 03:03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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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아마 지금쯤 많이들 들으셨겠지만, 미국 서부에서 테크 기업들의 자금을 유치하는 은행, Silicon Valley Bank 가 불과 하루만에 $42bn 의 뱅크런 (급작스러운 자금 인출로 인한 파산)을 맞아 전세계 금융권이 비상사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규모는 2008년 이후로 최대이며, 미국 역사상 2번째로 큰 은행 파산입니다.

찾아보시면 잘 요약된 내용들을 보실 수 있는데, 저도 과거 역사를 살짝 살펴보면서,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었는지. 개인 투자자의 포트폴리오에도 경종을 울려야될 부분은 무엇일지. 그리고 예상하기 어렵지만 위기가 퍼질 수 있는 시나리오는 무엇일지 한번 나누어 보겠습니다.

SVB의 파산의 가장 큰 특징은, 아래 홈페이지 문구에도 나와 있듯이 이 은행이 벤처투자사 (VC)한테 투자를 받은 테크 회사 및 바이오 회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예금을 예치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로 인해 최대 피해자는 테크 회사들이 됩니다. 돈을 넣어둔 은행이 망해서, 앞으로 예금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천신만고의 고생을 해야할테니까요. 현재 FDIC 가 (연방예금보험공사 - 한국의 예금보험공사) 예금자 보호를 위해 25만 달러까지 예금 보호를 해줍니다. 그러나 벤처 회사들에게 3억 수준의 25만 달러를 제외하고 나머지 예금이 묶이거나 증발한다는 것은 이 시국에 치명적입니다. 특히 경기 환경이 좋지 않아 추가 투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자금이 소요되고 있어 심각한 상황입니다. 다만 벤처 회사들의 줄도산은 자금이 더 두둑한 상장 회사들에게는 오히려 기회로서, 전체 경제에서는 악재와 호재가 상쇄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또 다른 뱅크런들로 번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죠.

한편, 고객이 테크 회사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사업모델의 문제기도 하였습니다. 은행의 한 임원은 "우리의 사업모델의 가장 큰 문제는, 친분으로 굉장히 강하게 뭉친 특정한 예금주들이 고객이었다는 것이고, 그들은 집단적으로 자금을 옮기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며 뱅크런이 언젠간 발생했을 수 밖에 없었음을 시사했습니다. (ft.com)

현재 바이든 대통령과 재무장관 옐런이 일선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bail-out (금융구제)은 선택지가 아닐 것 같고, 다만 불필요한 피해를 볼 수 있는 예금주들을 빨리 도와주려는 노력을 할 것 같습니다.

SVB의 문제를 살펴보죠.

2021년 테크 회사의 벤처 투자 붐일 때, SVB는 엄청난 예금을 유치하게 됩니다. 예치금은 $102bn 에서 한 해만에 $189bn 으로 성장했고, 이 중 $120bn 을 미국 국채 및 모기지 채권 등에 넣었습니다. (2022년말 $173.1bn)

다만 이 예금의 이자를 주고, 또 순이익도 올리기 위해, 채권들을 모두 장기 채권으로 구성하는 것이 대단히 큰 패착이 됩니다. 그것도 매우 낮은 금리에 말이죠. 이는 장기적으로 1.6%의 저리를 '보장'은 했지만, 중간에 금리 상승기에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 점이 가장 취약점입니다.

실제로 금리가 오르며 SVB의 전체 자본금에 해당하는 $15bn의 평가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10여년을 기다리면 모두 추가이자로 만회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일시적인 평가손실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어쨌건 정부가 보장하는 채권들은, 만기가 되면 금리와 원금이 다 입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중간에 채권을 처분해야 하면 사실상 평가손실이 확정손실이 되는 위험이 생기는 것이었죠.

즉, 예금주들이 10년간 예금을 내버려두고, 예금 규모가 줄지 않으면 버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당장 자금을 회수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심리의 게임이 됩니다.

이러한 갭을 보통 maturity risk 라고 부릅니다. 보험사와 은행 등 대규모 금융기관은, 중도 인출할 수 있는 유동성을 계산해서 만기를 맞춰야 하고,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maturity risk 의 대다수가 interest rate risk (금리 위험) 즉 중도에 금리가 오르내리는 민감도에 집중됩니다.

maturity 라는 개념은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흔히 maturity X 금리변화가 채권 가격의 일시적 등락과 비슷합니다. 즉, 5년 만기 (maturity)의 채권은 금리가 1% 오르거나 내릴 때 가격이 5% 정도 변화하고, 10년 만기의 채권은 10%, 30년 만기의 채권은 30% 변화한다고 할 수 있어요. 당연히 단기 채권을 사면 손실도 이익도 적겠지요. 그러나 통상 장기 채권이 더 위험함으로, 더 높은 금리를 주곤 합니다.

그래서 은행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방식은, 채권들의 maturity (만기)를 짧게 가져가는 겁니다. 10년물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초단기물을 들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금리가 올라도 손실을 많이 보지 않으며, 언제든지 유동화할 수 있습니다.

SVB도 2018년까지 1년 이하의 채권들을 보유했었으나, 금리가 낮아지며 점차 순이익에 욕심이 나서 무리하게 장기채로 옮겨간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에 금리 인상의 위험과, 벤처투자 붐이 끝날 때 피투자 회사들이 자금을 단체로 인출하는 위험 두가지에 노출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 금리가 오르며 손실이 나는 점은 이미 2019년에 확정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헷지펀드는 구체적으로 2021년부터 스타트업 버블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SVB의 공매도가 최고의 포지션이라고 밝히기도 하였어요.

어쨌든, 최악의 상황이 전개됩니다. 만기를 늘려둔 상황에서 금리가 4%p 수준으로 급격히 올랐습니다. 1년물을 들고 있었으면 -4%의 손실을 봤을텐데, 만기가 4년이었다면 -16%의 손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손실의 규모를 보면 전체 채권의 평균 maturity 는 대략 4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시점에 손실에 더해서 심리적, 사회적 문제가 생깁니다.

SVB는 최근 장기 채권들을 대규모로 매각하여 단기 채권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세웁니다. 이 과정에서 $1.8bn 의 손실을 확정하게 됩니다. 이 손실의 규모와 속도를 만회하기 위해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는데, 이 계획 자체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는 신호를 주게 됩니다. 이게 지난주 목요일 (3월 9일) 아침의 일입니다. 목요일쯤 부터는 피터 틸의 Founders Fund 를 포함한 대형 벤처 투자사들이 피투자사들에게 위험관리를 위해 SVB에서 자금을 빼라는 조언을 합니다. 예금이 빠진다면, 나머지 장기채권에 대해서도 매각을 통해 손실을 확정해야 하고, 그렇다면 그 자체로 $15bn 의 손실이 모두 기록되며 회사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리콘 밸리 테크회사들의 최고재무담당자는 서로 대부분 연결되어 있고, 목요일 하루종일 서로 연락을 취하며 자금을 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규모가 무려 예치금의 25%에 가까운 $42bn (한화 약 55조원) 이었던 것이죠. SVB의 주식은 거래가 중단되고, 예수금 보호를 걱정한 FDIC 가 즉시 개입하였습니다.

물론 예수금 보호를 통해 각 회사는 25만 달러 정도는 보호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자금들도 아마도 되찾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산 중 $73bn 의 대출이 있어, 시간이 흐르며 이 대출이 상환될 때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더 나아가 이 대출을 인수해줄 기업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추가 뱅크런을 막기 위해 이 정도 규모의 인수딜은 마련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는 SVB가 가지고 있는 대출입니다. 이 loan mix 도 생각만큼 고품질이 아닐 수는 있지만, 그래도 넉넉잡아 절반 이상의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최대 상상 가능한 손실 폭은 많아야 수십조 원의 수준으로, 온갖 파생상품이 뒤섞여 있던 서브 프라임때와 비견할 수는 없습니다.

참고로 JP 모건 등 대형 은행의 자산규모는 2300bn 으로 그 자산규모가 SVB의 열배 이상이며, SVB와 다르게 전국 각종 신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대형 은행까지 뱅크런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SVB의 자산 전체를 인수할 수도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부정적인 면을 본다면 현재로서 가장 예측불가능한 상황은 두가지입니다.

재무와 아무 상관 없는 사회 심리적 현상으로 여러 은행에서 자금인출이 줄 짓는다면, 더 큰 시스템 위험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 정부가 철저히 신경을 쓸 것입니다. 만약 어떠한 이유로 미국 정부마저 신용을 잃게 된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국제 공조 등 온갖 수단들이 존재하니 앞으로 지켜볼 일 같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저희가 전혀 파악치 못한 테크 회사와 암호자산 거래소 등간의 복잡한 계약구조가 있었던 경우입니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사 대다수는 암호자산 등에서 발생한 버블을, 유동성에 의한 기현상으로서 언젠가 꺼질 수 있는 시스템 위험이라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자금이 흘러간 것은 사실이나, 2008년 당시의 주택 경기와 같이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원리로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15년 안에 두번의 버블에 연속으로 당한다면 사실 금융권은 다시는 신용을 얻기 힘들테지요.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위험은 항상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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