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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지 않으면 상급종합병원을 취소해야 한단다.

Tmarket 2023. 7. 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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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ㅣ 소아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지 않으면 상급종합병원을 취소해야 한단다. 아연실색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더니.

글쓴이의 세계관은 문제가 없다. 소비자가  불합리한 의료 시스템에 분노하는 건 당연하니까. 다만 아쉬움은 있다. 전문 영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억울함과 분노에서 끝냈어야 했다. 상급종합병원 취소라는 대안은 선을 넘었다.

기사의 주장과는 별개로, 내용은 사료로써 가치있다. 이 시대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덕분에 현재 응급실이 처한 어려움이 고스란히 반증되고 있다. 심지어 기사에 등장하는 의사들마저 응급실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를 보여준다. 소비자, 글쓴이, 의사 모두가 응급실 붕괴에 한 몫씩 기여하고 있다.

전문기자가 아닌 일반인의 기고글을 조목조목 난도질하는게 바람직하진 않지만,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교정 해줘야겠다. 꼭 글쓴이가 아니라 응급실을 이용하는 모두에 대한 설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저녁쯤 발열이 있어 다음날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볼 때는 이미 입원 처방이 나왔다. 소아과 원장님이 여기저기 전화도 걸고 문자도 남겼지만, 병상은 구하지 못했다. 응급실로 갔다.]

응급처치를 위해 응급실에 온 게 아니다. 일과시간에 이미 진단과 처치가 끝난 상태다. 병원에 빈병실이 없어, 입원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면 응급실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둘 중 하나다. 밤 사이 입원실 대용으로 응급실을 사용하기 위해서. 혹은 응급실을 통하면 입원실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응급실은 입원실 대용도 아니고, 대기장소도 아니다. 빠른 입원 티켓을 끊기위한 공간도 아니다. 그러면 응급실은 뭐하는 곳이냐?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진단하고 응급처치를 하는 곳이다.

일반 입원실 기능까지 제공할 여력이 응급실에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물론 지금도 수 많은 환자가 입원실 목적으로 응급실을 활용하고 있는데, 사실 그로인해 잃고 있는 기회비용은 정말 응급한 환자의 치료 기회다.

응급실 포화도가 너무 심해 응급환자가 뺑뺑이 도는게 화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 소중한 응급실 침상을, 입원을 대기하는 환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 자리가 비어있다면? 추락이나 심정지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을 가능성이 올라간다.

[응급실 출입은 거절당했다. 아이는 헉헉거리며 눈을 감은 채 처져 있는데 '해열제를 줄 테니 돌아가라'고 했다. 주3일제 약국이 아니고, 응급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응급실 출입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당장 응급실 진료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라면 다른 의료기관이나 외래로 보내는게 가능하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내용이다.

아이에 대한 평가는 보호자가 내리는게 아니고 전적으로 의사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내린다. 초진한 의사가 해열제가 응급처치라고 판단했으면, 더 이상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그제야 낮에 소아과 원장님이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요즘 소아응급실 들어가기 힘들어요. 애 죽는다고 무조건 밀고 들어가야 지킬 수 있어요."]

의사들마저 응급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사실 거의 모든 의사가 마찬가지다. 응급실은 의학의 개념만으로 접근하는게 아니다. 반드시 시간과 자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트레이닝 과정에 집중적으로 배우는 것도 이것이다.

의사들은 타 임상과에 대한 존중이 기본인데, 이상하리만치 응급의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훈수를 둔다.

무조건 밀고 들어가라는 조언은 일반인들이 술자리에서나 나눌 얘기다. 의사가 진지하게 해 줄 조언이 아니다. 응급의료 시스템을 파괴하는 행위고, 그로 인한 피해는 사회 전체가 부담한다.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는건 환자나 보호자가 판단할 일이 아니고, 의사가 자신의 지식을 걸고 판단해야 한다. 판단 기준은 당연히 당장 응급실에서 처치받지 않으면 위험하느냐다.

응급실 진료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했다면? 병실이 없다고 환자를 귀가시키면서,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라는 무책임한 조언을 할 게 아니다. 당장 응급실로 전화해 환자 상태를 인계하고 수용여부를 확인 해야한다. 이 또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열 손가락 끝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정신 차리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탈수가 왔다고 이대로 돌아가면 죽는다고. 나이만 4살이지 돌쟁이보다 작다고 제발 들어가게 해 달라고 빌었지만, 열이 난 지 24시간이 안 돼서 안 된단다. 결국 우리 아이가 이 병원 등록 환자라는 마지막 말에 응급실 문이 겨우 열렸다.]

응급의료 시스템이 망가지는 요인 중 하나가, 응급실마저 환자의 선택권이 너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인이 원하면 누구나 최상급 응급실조차 걸어서 내원할 수 있다. 본인부담금을 조금만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경증 환자도 언제든 가장 큰 응급실을 마음껏 이용하는게 가능하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는 이들을 다른 의료기관으로 안내하는게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게 여의치 않다. 환자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응급하다고 믿고, 다른 사람의 사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선순위가 낮다는 의사의 설명에 쉽게 납득되는 사람은 없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돌려보내려면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우리에겐 그런 노력을 기울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다른 중증 환자를 치료할 시간도 모자라다. 실랑이를 벌이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품은 일반적으로 그냥 환자를 수용해서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보다시피 글쓴이도 끈질기게 빌어서 응급실에 입성했다. 설득안된다.

[아이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오전 6시면 무조건 병원에서 나간다' '검사 결과 어떤 상태라도 입원은 안 된다'는 조건에 동의해야 진료를 해주겠다고 했다. "이게 뭔 소리지?" 생각할 틈도 없이 체구가 작은 우리 아이에게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간호사가 라인을 못 잡으면 수액을 못 맞을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병원에 입원실이 없다는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병실이 있었으면 낮에 소아과에서 입원을 했을 터. 애당초 입원실이 없어서 응급실에 온 것이다. 그런데 응급실에 있다고 없던 입원실이 생겨나나? 누군가 퇴원을 해야 병실이 생길텐데, 보통 야간에 퇴원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입원이 안된다는 설명을 미리 하는 건 중요하다. 처음에 생략했다간 나중에 욕을 사발로 얻어듣기 십상이다. 입원도 안되면 애초에 환자를 왜 받았냐? 처음부터 말했으면 입원되는 병원을 찾았을거 아니냐? 비싼 응급실 진료비 챙겨먹으려고 그런거냐?

설마 이렇게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겠지만. 실제로 거의 대부분이 다 그렇다. 아이가 아프고 입원해야 한다면서! 이제 와서 병실이 없다고? 가만히 수긍하는 보호자는 없다. 당연히 미리 충분히 설명해야 뒷말이 준다.

라인을 못 잡으면 수액을 못 맞는단 것도 마찬가지. 일단 문자 그대로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라인은 링겔 놓을 혈관을 찾는건데, 그거 실패하면 수액 줄 방법은 없다.

아마도 그런 기술적인 얘기가 아니라, 왜 미리부터 겁을 주냐는 불만인거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화를 내서다. 애들은 원래 혈관잡기가 쉽지 않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인력으로 안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미리 설명해 두어야 나중에 조금이라도 면피가 된다. 이것도 몸으로 욕을 먹어가면서 체득한 노하우다.

(급하면 뼈에 드릴로 주사를 박아 넣을수는 있는데, 이거 대한민국에선 심정지때도 시도하는게 만만치 않다. 눈치가 이만저만 보이는게 아니라서. 의학적 안전성은 입증되어 있지만, 감성의 영역에 대한 안정성은…)

[검사 결과, 아이는 염증 수치가 22.95였고 입원이 필수라고 했다. 입원실은 절대 못 준다면서 꼭 입원해야 한다는 3차 병원, 기가 막혔다.]

아니 왜 응급실에서만 기가 막히는지 모르겠다. 애당초 낮에 소아과 진료때, 그때도 입원이 꼭 필요한데 입원실을 못 구했다 했는데, 기가 막힌 시점은 그때여야지 않았을까?

입원이 필요한 것도 입원실이 없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으면 그때 분노했어야 사리에 맞다. 응급실 올때는? 입원이 필요하지만 입원실이 없단 사실을 다 알고 왔는데, 다 알고 있는 사실에 왜 분노해서 그걸 응급실에 투사하는지 의문이다.

[곧 아이 하나가 낙상사고 후 구토를 한다며 응급실로 들어왔다. 나와 마찬가지로 '6시에 나간다' 'CT상 뇌출혈이 있어도 입원은 없다'는 조건부 진료가 이뤄졌다. 무서워서 숨을 죽이고 내 아이를 더 꼭 껴안았다. 고개만 쳐들어도 아이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내쳐질 것만 같은 밤이었다.]

6시에 나간다는 조건이 왜 있냐면, 상급종합병원이나 응급의료센터 평가 기준때문이다. 응급실 환자의 체류시간이 길어지면, 응급센터 지원금이 줄어든다.

전남대병원은 병실이 항상 만실이고, 그러면서 중증도 높은 환자가 집중되는 응급실이다. 그 결과? 주변 권역응급센터보다 항상 낮은 성적표를 손에 쥔다. 지원금도 훨씬 적게 받는다. 이게 합리적인가?

평가기준에 맞춰 병원들을 처단하라고?

평가에 맞춰 재실시간을 줄이기 위해, 6시에 나가라고 종용해서 불만이란다. 그런데 평가를 지키지 않으면 과감히 센터를 취소시키잖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난감하다.

[그러다 지난 4월 응급실 사태를 겪고는, 내가 여기 앉아 상담받을 이유가 있느냐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한동안 대답을 못 하던 선생님은 '잘 대처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헤쳐 나가면 된다'라고 했다.]

지금도 수 많은 의사들이 글쓴이처럼 무작정 밀고 들어가는걸 옹호한다. 아니 그를 넘어선다. 의사들도 응급실에 개념이 없다. 일단 환자를 보내면 응급실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래환자의 입원실이 부족하면 응급실로 의뢰하는건 예삿일이다. 이전엔 코로나 확인해달라고 입원예정 환자를 응급실로 보냈었다. 응급실은 밀고 들어가는 장소니, 따로 의뢰도 안하고 그냥 환자를 보낸다. 온갖 병원, 외래에서 응급실을 일종의 의료용 AS공간으로 인식한다. 전문가라는 의사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다. 응급실은 항상 예비 공간으로 더욱 비워져 있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응급실은 침대가 포화되어도 환자를 계속해서 밀어넣는다. 병실, 중환자실 모두 규정병상이 있고, 그를 초과하지 않는데, 유난히 응급실만큼은 무한대의 수용공간을 요구한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의료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대신 30% 가산된 수가를 받고, 각종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소아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지 않는 3차 병원은 지정을 취소해 버리는 게 사리에 맞다.]

입원실 문제를 왜 소아응급실 문제로 둔갑시키는지 의문이다. 왜 이놈의 나라는, 이놈의 국민은, 이놈의 병원은 무슨 일만 있으면 응급실을 쥐어패는지도 의문이다. 소아응급실이 생기면 입원실이 늘어나나?

자꾸 응급의학과가 타겟이 되어 끌려다니니 돌아버릴 지경이다. 응급실을 관할하는 우리가 병원 전체의 자원을 좌지우지할 권한이 있을리 만무한데. 일이 생길때마다 응급의학과는 병원과 나라, 정치에 문제집단으로 낙인찍히고, 그 결과 발언권은 갈수록 약해진다. 아니 시발. 힘을 실어줘도 시원찮을 판인데. 죄인처럼 고개 수그리고 있는게 일상이다. 모두가 우리를 손가락질하고 있으니…

응급실이 타겟이면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라, 권역 응급의료센터를 취소하면 된다. 참고로 아산, 삼성은 권역이 아니고 한단계 낮은 지역센터다. 물론 저 응급실들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할리 있나?

권역센터가 받는 혜택 대비 맡아야 하는 의무를 보면 취소 소리 쉽게 안나올것이다. 상급종합병원 취소되면? 고민하지 않고 응급실은 지역센터를 넘어 지역기관으로 자진 낙하할 것이다. 그 손해를 누가 볼지는 명약관화.

[아이를 편하게 키우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못 들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보건당국은 왜 빈 병실이 있는데 아동 환자는 받아주지 않는지 국민이 납득할 만한 답을 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쯤 되면 병실이 진짜로 없다. 우리는 응급실에서 날마다 온 병원의 빈병상을 샅샅히 뒤진다. 환자 입원실 찾으려고. 그럼에도 하루이틀씩 응급실에 대기하는 환자들 부지기수다.

왜 병실이 없냐고? 병원을 더 늘려야지 않냐고? OECD 기준 2배의 입원으로도 부족해서? 하긴 그래서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끝도없이 분점을 짓더라. 사람들도 입원실 없다고 난리는 치면서 또 정작 작은 병원은 죽어도 안가더라. 소아과 오픈런이 문제라고 악다구니 쓰면서도 여전히 파리날리는 소아과 병원도 많고.

*

답답하다.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응급실로 치환시키는 습성이 있다.

기사의 사례를 다르게 접근할수도 있다. 애당초 낮에 소아과 진료를 볼 때 입원이 이루어졌다면, 응급실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쉽네. 이 단계에서 입원을 못해주는 병원을 폐쇄하면 되겠다. 애먼 응급실 좀 그만 쥐어패고.

아 물론 저 방법도 지옥이다. 병실은 유한한데, 저러면 외래에만 입원실을 배정해서 응급실 환자는 영원히 입원할 수 없게 되니까. 그러면 어쩌라는 말이냐고?

원론적인 얘기밖에 해줄게 없다. 의료이용을 줄여야하고, 의료선택권도 줄여야 한다. 실제로 꼭 병실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가 무수히 많이 입원해있다. 그게 우리나라다.

모든 사람이 응급실을 잘 못 이용하고 있다. 여긴 놀이공원이 아니다. 하이패쓰 티켓을 파는 곳이 아니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응급실에 대한 의사들 인식이 가끔 일반인과 차이없게 느껴질때가 많다. 요새는 119도 난리다. 수용거부금지법도 나왔다. 119 환자는 응급실에서 무조건 수용하란다. 에휴. 모두가 일단 응급실로 환자를 들이기만 하면 해결되는지 안다.

물론 해결한다. 응급의학은 전쟁터와 맞닿아있다. 재난의학은 우리의 특기다.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면 우선순위를 정해서 회생 가능성이 낮은 환자는 과감히 버릴지 안다. 그런 특수한 훈련을 받은 게 응급의학과 의사들이다.

그 중 누군가는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원혼이 되더라도 제발 응급실이 아닌 이 세상을 원망했으면 좋겠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아닌 세상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원망했으면 좋겠고.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2yXgBdZVFMs9xx7TEWRc2MZLtttxSC7itdB3vgUsWyUeyUF4o5UbkUeqCRfqrEsMHl&id=100001567848059&mibextid=2JQ9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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