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선고. 삶보다 죽음을 먼저 겪으며
진짜 우리나라 의사분들.참 대단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존경하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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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ㅣ [저도 마음이 착잡해서…]
3월 1일. 첫 근무. 응급실에 첫 발을 내딛는 1년차의 심정은 뻔했을 것이다. 설렘 반 긴장 반.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뻔하지 않았다. 사망선고. 삶보다 죽음을 먼저 겪으며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를 시작했다. 아직 단 하나의 생명도 살려보지 못했는데…
착잡해도 괜찮다. 삶보다는 죽음에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 좋다. 이전 전공의 중에는, 자신이 주치의로 맡은 첫 환자가 입원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적도 있었다. 삶이든 죽음이든 그저 일상일 따름이다. 그러니 착잡하지 말자.
1년차는 어쩌다 근무 시작부터 우울한 업무를 맡았나? 죽음의 심오한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그저 3월의 첫날이 눈코뜰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첫날의 의사에게 시킬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게 전부였다.
다른 모두가 아직 살아있는 환자와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사망한 환자까지 손을 돌릴 틈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래서 1년차에게 일이 내려갔다. 어차피 더 할 처치는 없었다. 남은건 그저 사망 사실에 대한 고지 뿐. 의사면허가 있으니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을테지.
우린 그가 소생실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자기 일 하기 바빴다. 괜찮다. 호랑이는 새끼를 강하게 키운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영상으로 그 광경을 확인했다. 1년차를 불렀다.
[......사망선고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어반복이 너무 심해. 사망선고 내리겠습니다. 혹은 사망선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줄이면 어때? 사망을 선고합니다 라고 해도 좋고. 아예 사망했습니다 한마디로 압축하는 건 어때?"
"이 교수님 T야 T."
옆에서 듣고 있던 윗년차 전공의가 1년차에게 한마디했다.
"그냥 T도 아니고, 슈퍼 T, 슈퍼T."
치프도 한마디 거든다.
이 새끼들 봐라? 1년차한테 좋은거 가르친다. 아주.
"T발 C라고는 안하네?"
"차마 못했는데, 감사합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대부분 E나 T일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의국은 뜻밖에도 I와 F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나같은 T는 늘 소수파로서 핍박을 받으며 산다. 뭔 말을 못 하겠다. 억울하다.
"너희 사망선고 하고선, 돌아서서 당직실 들어가면 바로 라면 끓여먹잖아. 나처럼. 그렇지? 얘처럼 착잡해하고 그러지 않지? 근데 왜 나만 T냐고!"
"애기가 처음으로 사망선고를 했는데 공감은 못하시고. 쯧쯧."
*
F는 아래 내용을 skip바랍니다.
전공의들이 T라고 갈궈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했다.
[2023년 3월 1일 4시 4분경에 사망선고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장에 생략된 주어는 의사인 나다. 고로 행위의 주체는 나다. 사망선고를 받았다는게 아니고 내렸다고 했기 때문에, 문장의 주인공은 환자가 아닌 의사다.
사망선고 당시에, 전공의가 전달하고 싶었던 건, 사망선고를 내리는 자신의 행위일까? 아니면 사망했다는 환자의 상태였을까? 당연히 후자다.
주어뿐 아니라 누구에게 사망선고를 내린다는 건지 대상도 생략되고 없다. 그러면 후자의 목적이 더욱 희석된다. 따라서 사망선고를 할 때 환자의 이름을 호명하는게 좋다.
사실 사망선고라는 어휘를 선택한 순간 의사는 딜레마에 갇힐 수 밖에 없는데, 단어 자체에 널리 알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누구 환자분 몇날몇시에 사망선고 받으셨습니다." 라는 선언은 불가능하다. 들어야 할 이는 청중이 아니고 보호자며, 전달할 내용은 선고가 아닌 사망소식이니까.
애초에 선고라는 단어는 판사가 법정에서 쓸 때나 자연스럽다. 아니면 쓰레쉬가 사슬 날릴 때나… 다수 청중 앞에서 선언할땐 유용하지만, 당사자로 개입해서 사용할땐 조금 부자연스럽달까?
그래서 나는 보통 "몇날몇시에 누구누구 환자 사망했습니다." 라고 짧게 말하는 편이다. 물론 이것저것 다 생략하고 "사망했습니다" 한마디로 퉁칠때도 많다. 사망 시각이란게 현장에서는 원래 여러 이유로 선고 시각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
사실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사망선고는,
죽음에 대한 선언이라기 보다는, 이제 그만 모든걸 내려놓고 울어도 좋단 완곡한 표현에 가깝다. 간혹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지만…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2gKPPQyTP8kbBrdEGon3HLhxMQWhwTiJRNLmWMFq8vAr71h5p5SdhrZmnpy1mGZXNl&id=100001567848059&mibextid=2JQ9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