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하루하고도 반나절 돌아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묘가 있는 닛코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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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닛코Nikko
도쿄를 하루하고도 반나절 돌아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묘가 있는 닛코를 방문했다. 아사쿠사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도쿄 근교 목적지로는 원래 가마쿠라만 계획에 넣었다가 닛코는 도쿄 현지에서 급작스레 결정하여 가게 되었는데, 준비가 부족하여 허둥댄 적이 많았다.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역시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도 볼 건 다 봤고, 안 보면 후회할 뻔했다. 닛코는 도쿄 기준으로 동북쪽으로 140km, 가마쿠라는 정반대인 남서쪽으로 50km 떨어져 있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면 나로서는 닛코를 택할 것 같다. 닛코에서 차로 이로하자카라는 48구비 도로를 돌아 산 위로 올라가면 놀랍게도 산 정상에 큰 호수가 있는데, 바로 주젠지中禪寺 호湖다. 여기에서는 케곤華嚴 폭포를 볼 수 있다.
닛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이곳의 이사일사二社一寺다. 이사二社라 함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패를 모신 신사神社인 도쇼쿠東照宮와 고대로부터 내려온 산악신앙의 중심지로서 1619년에 본전이 건축된 후타라산二荒山 신사를 말하며 일사一寺는 848년에 창건된 린노지輪王寺를 지칭한다. 린노지 본당은 1647년 건축되었고, 3개의 대불상이 있어 삼불당三佛堂이라고도 한다. 이 3개의 문화유산은 1999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도쇼쿠는 1616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으면서 그 이듬해에 그의 아들인 히데타다가 시즈오카로부터 그의 유해를 가져와 영묘를 만들면서 창건하였고, 손자인 3대 쇼군 이에미츠家光가 연인원 180만 명을 동원, 확장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도쇼쿠는 당시 최고 기술이 동원된 것으로 조각이나 색채가 뛰어나다. 그 건축 양식은 일본 신사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으로서 본전과 배전이 연결된 곤겐즈쿠리權現造다. 세 마리의 원숭이가 눈, 귀, 입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은 산자루三猿나 잠자는 고양이를 조각해 놓은 네무리네코眠猫가 볼만하다. 산자루는 나쁜惡 것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교훈을 형상화 한 것이라 한다.
도쇼쿠의 정문 격인 요메이몬陽明門으로 올라가는 마당에는 1643년 당시 인조가 조선통신사 편에 보낸 조선종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증정했다는 오란다 도로라는 랜턴과 함께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삼구족三具足도 함께 가져갔다는데, 이 삼구족(향로, 촛대, 화병)은 볼 수 없었다. 이 조선종의 성격에 대한 주장은 일본과 한국 간에 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조선종 건너편에 전시되고 있는 네덜란드의 랜턴도 결국은 일본과 상업 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한 일종의 선물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네덜란드의 랜턴 앞에는 이것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지만 조선종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주변 일본인에게 물어봐서 이것이 조선종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왜 일본은 이것에 대한 안내판을 만들지 않았을까?
다섯 번째의 조선통신사가 도쇼쿠가 완공되면서 조선종을 갖고 에도로부터 이곳까지 140km를 와서 이에야스가 모셔진 이곳 사당을 참배하고 다시 에도로 돌아갔다는 건 이 사절이 우리의 주장과는 달리 조공 사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내가 만난 빈Wien 대학의 일본사 전공 제프 린하르트Sepp Linhart 교수는 당시 막부가 주민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조선에 제철 재료를 보내서 주조한 종을 가져오게 한 것이라고 했다. 생각건대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화에서 벗어난 직후였으며 더 이상의 전란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런 동기에서 꼭 조공 사절이 아니더라도 일본과 화친할 필요에서 사절을 보낸 건 사실일 것이다. 사절이나 사신은 따지고 보면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보내는 것이지 않나? 네무리네꼬를 지나 상당히 긴 계단길을 올라가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잠들고 있는 그의 영묘다.
도쇼쿠를 보고 느낀 것은 일본 고건축의 섬세함과 화려함이었다. 특히 정문 격인 요메이몬과 본전 앞의 카라몬唐門의 조각상들은 마치 서양 교회 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주위의 자연경관과 매우 조화롭게 설계되어 있다.이것을 보면서도 일본의 건축이나 문화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