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인공지능의 몫이라고 해도 이를 토대로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건 인간의 몫이다.
펌)) 조금은 안타까운 장면(?)이다. 세월의 흐름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AI를 바라보는 촘스키의 시선이란 마치 러다이트 운동에 앞장섰던 19세기 방직 노동자들의 그것을 닮았다.
인공지능과 인간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주체의 대체 가능성에 대한 적부판단에 골몰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촘스키는 인공지능을 '타자'로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치 노동자들이 거대한 방직-방적기를 자신의 삶을 잡아먹는 괴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인공지능이란 말하자면 <백설공주> 속 마법의 거울과 같은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니? 왕비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거울은 "백설공주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뒤 왕비가 보인 행동은 거울을 깨뜨리는 것도 아니요, 거울과 논쟁을 벌이거나 거울의 미적 판단능력을 폄훼하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거울이 학습한 데이터 그 자체를 바꾸는 일, 즉 백설공주를 제거하자하는 판단을 내린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인공지능의 몫이라고 해도 이를 토대로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건 인간의 몫이다. 여왕이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한 데 대한 책임을 마법의 거울에게 물을 수는 없다. 거울은 주어진 질문에 대답을 한 것뿐이니까. 그것도 확인 가능한 데이터 하에서는 가장 '정확하게'. 마법의 거울은 사용자를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거짓된 답을 내놓지도 않는다. 아니, 애초에 마법거울의 관점에서는 '참'과 '거짓'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거울의 답변을 바꾸려면 그가 학습한 데이터에서 백설공주가 빠지든지, 아니면 백설공주보다 더 에쁜 데이터가 포함되면 그만이다. 여기에 개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몫이다.
나는 촘스키의 답변이 오히려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귀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고, 인공지능은 계속해서 발전할 수밖에 없고 일상에서의 활용도 역시 점점 높아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 두뇌의 창조적 활동을 따라올 수 없다는 지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건 마치 <백설공주>의 마법거울이 왕비에게 선한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인간보다 못하다며 비난하는 격이다. 차라리 마법거울에게 화장법과 성형기술에 대한 데이터를 추가해서 백설공주보다 더 예뻐지는 대안을 제시하는 알고리즘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거울이 주어진 데이터를 제대로 비췄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자율주행기술이 계속 발전하여 지금은 종적(속도) 움직임은 물론 횡적(차로유지 및 변경) 움직임까지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운전대를 잡는 것은 인간이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최종적인 책임 또한 운전자인 인간이 진다.
자율주행 활용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자율주행기술 그 자체나 이를 개발한 회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술은 오류를 발견하고 바로잡는 일을 하지, 오류 그 자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다. 책임은 인간의 몫이다.